• 재택근무, 오피스근무 그리고 미신
    ESSAY 2023. 12. 2. 09:39

    재택근무 : 근로 형태의 일종으로, 정보 통신 기기 등을 활용하여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형태
    미신 :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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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의 두 단어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프로그래밍에서 모듈 간 결합도는 느슨한 연결이 좋다고 배웠지만 이번의 경우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작한 재택근무가 엔데믹으로 들어서면서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의 비율을 차츰 줄이거나, 없애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출근제도 변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저는 오피스 근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피스/재택근무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피스 우선 근무로 전환을 위한 회사 측 주장의 근거가 대부분의 직원을 설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측에서 주장하는 오피스 우선 근무 전환의 가장 큰 이유는 협업을 통한 업무의 효율성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근무제도 간 업무의 효율성의 차이를 계산하기 어렵고, 회사와 직원 모두 둘 중 뭐가 확실히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사측에서도 더 강하게 오피스 근무로 푸시하지 못하고, 직원들도 출근제도의 변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들의 생각을 오피스 우선 근무로 굳히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혼자 생각하는 중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미신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통제감 강화가 하나의 예인데요. 인간은 불안정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성이 특히 높아진 요즘의 경제상황에서, 세계경제를 통제할 수 없으니 통제 가능한 상황들을 자신 안에 둠으로써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마치 야구 경기에서 대부분의 투수와 타자가 공을 던지기 전 또는 타석에 들어서며 매번 자신만의 루틴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결국엔 그것이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야수의 경우에는 거의 미신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확정성이 높은 투수나 타자에 비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실수할 확률도 현저히 낮아서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건 야구경기에서 외야수와 타자는 같은 사람이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미신적인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출근제도에 대한 경영진의 생각을 아주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피스 근무에 대한 미신의 시작은 오래된 근무방식을 통해 이루었던 성공이나 위기 극복의 경험에 따른 관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변화,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그것들을 우리가 원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 아까 지나간 고양이가 돌아와 이야기했습니다. 검은 고양이와 불운은 느슨하게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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