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같은데 자꾸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법은 어겼지만 그래도 인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없는 법도 만들어서 사랑의 교회 문제도 해결해 준 것처럼, 어떻게 좀 좋게 해결해 달라는 명성교회의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고, 그것도 부족해 우리가 이렇게 결정했으니, 다시는 이것에 대해 문제 삼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가 되어서 대한민국의 개신교에는 더 이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약 2000년의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교리나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가운데 이와 같은 문제나 오류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지금까지 인도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이야기하는 대로 믿고 따르면 구원이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구원을 의미하는 천국과 지옥도 인간의 생각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그것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이 설자리가 점점 좁아진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만든 과학 안에서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다. 성서도 인간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오류가 있고, 저자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쓴 부분도 있으며, 잘못 번역된 부분도 있고, 때로는 좋아 보이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다르게 번역한 부분도 있다. 교회도 인간에 의해 지어졌고 교회의 문제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지만, 교회나 성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든 책과 건물 안에 갇혀 계시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시에 있는 교회를 다닐 때 좋아했던 목사님이 있었다.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아 영국으로 떠나셔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분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하셨던 설교가 생각이 났다. 베데스다 연못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의 이야기였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지만, 병자는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물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고 대답했다. 목사님은 이 병자가 예수님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이유가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완전치 않은 교회와 성서라는 프레임 안에서 강요된 하나의 시각(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알 수 없는)으로만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니, 개인의 독창적인 믿음을 잃고,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